manifesto
우리는 정보의 양이 권력이 되는 시대에서,
정보를 해석하는 주체의 독립성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1. 서론. 에자일로부터
지난 10년 이상 IT 업계를 휩쓴 ‘에자일(Agile)’을 생각해봅니다. 에자일은 어느 날 갑자기 “선진적인 문화”처럼 등장했고, 스타트업이라면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진리처럼 소비되었습니다. 많은 조직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어떤 곳은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사람들은 에자일을 회의적이고 조심스럽게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실패 비용은 오로지 에자일을 믿었던 그들의 책임일까?
과거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해외의 정보를 발 빠르게 수입하여 현지화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어떤 비판도 거치지 않은 채 ‘수입된 지식’을 중계 전파하는 이들이 전문가로 추앙받고 권력을 가지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2010년, 에자일이 한국에 처음 나타났을 무렵도 비슷했습니다. 발 빠른 사람들이 에자일을 수입해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당시 에자일 부정론자들은 대부분 관련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에자일 방법론의 한계를 빠르게 간파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런 비유를 쓰기도 했습니다.
- ·서울대 합격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방법론으로 만들었다.
- ·그 방법론은 매일 새벽 4시까지 잠을 안 자는 것이다.
- ·이제 너는 이 방법으로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비유를 보는 대부분 사람들은 금세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에자일 방법론에서 이 비유를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에자일 옹호론자들은 최신 정보를 노출함으로서 얻는 정보 권력부터 에자일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등장시켜 정치적인 입지를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팽창을 전제로 하는 자본사회와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자본사회 아래에서 에자일 옹호론자들은 승승장구했고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고 그 동안 에자일은 한국에서 k-에자일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bad cases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가장 씁쓸한 장면은 미국의 회의적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회의조차도 k-에자일의 bad case를 위한 또 다른 상품이 되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게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토론하는 대신, “어떤 말”만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 수줍은 선전포고
물론 지금 에자일은 예시일 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지식이 전파되는 구조입니다. 어떤 개념이 “최신”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되고 충분한 검증이나 비판 없이 퍼지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그 지식을 ‘권위’로 포장해 영향력을 얻습니다. 이때 지식은 더 이상 탐구의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그걸 믿었던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사회는 이런 피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개인은 내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피해에 무관심하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시스템의 문제이며 개인이 이 시스템의 한계를 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또한 같은 개인으로서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평범함이 되는 것도 비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자본사회에 저항하고자 합니다.
① 감시 자본주의 (Surveillance Capitalism)에 대한 저항
오늘날의 서비스들은 사용자를 자본의 먹잇감으로 여기며 정보를 갈취합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에 의도적으로 저항합니다. 회원가입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불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거부하며, 오직 사고의 흐름과 논리적 타당성만이 가치를 갖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개인 정보는 식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② 지식 식민주의 (Knowledge Colonialism)에 대한 저항
그리고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외부의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수입된 정보의 양이 아닌, 우리만의 논리적 귀결과 비판적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이 정보는 왜 우리에게 유효한가?
- ·숨겨진 맥락은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 ·더 나은 해석이 존재하는가?
③ 지식 기반 의사결정 (Knowledge-based decision making)에 대한 지지
대안으로 우리는 가장 유능하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과학적 의사결정을 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진실은 투표가 아닌 정의(definition)와 검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리와 논리, 증거와 검증이 사회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이 가장 큰 책임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길 바랍니다."
3. paper 서비스 원칙
paper는 ‘기록 서비스’이기 이전에 사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아래의 원칙을 지킵니다.
① paper는 프로필 계정, 팔로우, 랭킹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이메일 OTP 인증이라는 최소한의 접점만을 사용한다. 이메일은 인증을 위한 휘발성 도구일 뿐이며, 당신의 행동을 추적하거나 재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 플랫폼이 아닌 정보 그 자체를 통해 연결되는데 기여한다.
② paper는 수정 기능을 제한한다.
의견을 전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의견을 꺼내기까지의 고민과 망설임은, 결국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깊은 과정이다. 반대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기록은 책임을 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발행된 글은 고치지 못 하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③ paper는 본질적인 가치 복원을 지향한다.
'직장을 얻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는 것은 사실이면서 동시에 '대학은 취업교육센터'는 아니기도 하다. 본래 대학의 목적은 진리 탐구이나 현재는 본질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실질적인 목적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자본화 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많은 개념들을 우리는 복원한다.
④ paper는 언어(문자) 형식을 추구한다.
언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철학자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말처럼 언어로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을 우리는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논리적인 표현을 통해 정확한 의사소통을 한다.
⑤ paper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다.
관측 가능한 것만으로 다루고 관측 가능한 것을 모델로 이해하며 모델을 구성하는 데이터가 바뀌면 그 해석도 바뀔 수 있다. 즉, 오늘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내일 바뀔 수 있으며 변화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인정하며 변화를 인정했을 때 관성의 크기는 0이다.
⑥ paper는 비동기 소통에 기반한다.
이미 네트워크는 인간의 존엄을 해칠 만큼 쉬지 않고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중요한 흐름을 관찰하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시간이라는 주제를 배제하고 비동기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⑦ paper는 광고 없는 정보 제공을 지향한다.
돈을 받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실어주는 것은 서비스 본질에 위배되기 때문에 우리는 서비스 종료 시까지 광고 없이 공정한 정보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