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년 경력 에디터의 페이퍼 오리지널 콘텐츠

LATEST3월 5일·편집장

숨고, 카닥 vs 장한평

충전 케이블 정리하다 본인 차에 덴트를 냈고, 카닥·숨고에서 받은 견적은 20~55만원에 1~2일 수리. 찝찝한 마음에 장한평을 찾아갔더니 사장님이 직접 보고 40분 만에 5만원으로 95% 복원해줬다. 온라인 플랫폼은 사진 기반 포맷 때문에 작업자는 보수적으로 견적을 높이고, 소비자는 비교만 하게 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든다. 결국 현장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는 장인의 효율을 플랫폼이 이기지 못한 날이었다.

1. 사건의 발단

2월 말이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렸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대충 충전 케이블을 정리하고 차를 움직였다. 스르륵 움직이자 마자 뭔가 꿀렁했다. 충전케이블을 차가 밟은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 날 따라 약속시간에 쫒겨 허둥대는 내 자신이 싫었다. 비가 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서둘러 케이블을 정리했다.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손에서 놓친 커넥터가 차 옆구리를 땅!하고 때렸다. 순간, 온 몸이 굳었다가 다시 차를 확인해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아니 비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설이 지나고 3월이 되어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 어라? 차 옆구리에 작게 옴폭 들어가 있었다. 비오던 그 날이 떠올라랐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차라리 남이 가해했으면 마음은 덜 아팠을 것 같다. 아. 내가 괜히 그 날 시간도 넉넉했는데 서두르다가 이렇게 일을 만들었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집으로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 어플을 깔기 시작했다. '카닥'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도장면도 괜찮고 덴트로 고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날아오는 견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 55만원, 44만원, 29만원...
  • 수리기간 1일~2일???

찝찝한 기분으로 다른 어플을 깔았다. '숨고'이다. 예전에 집 건축할 때 아주 잘 사용했던 어플이라 내 기억에서 인상이 좋았다. 숨고에도 차량 수리가 있겠지 하고 확인해봤다. 그리고 견적을 요청했더니,

  • 20만원, 25만원...
  • 수리기간 1일 이상???

내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이런 거 하나 뽑아 올리는데도 30만원 이상 줘야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55만원이면 문짝 도색을 새로 하는 가격 아닌가? 요즘 문짝 도색은 한 판에 100만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jhp

2. 자초지종

그래서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 볼보 처음 뽑았을 때 자주 가던 매직덴트 잠실점 사장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름 단골이었고 사장님 실력은 테스트드라이브에서도 꽤 알려져 있었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이사가셨던데..."

장미 아파트 재건축으로 사장님은 논현동으로 이사를 가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문콕 하나 하려고 여기까지 오시게?라며 그 쪽에도 문콕 정도는 잘 할텐데..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 덴트도 싸지 않아요. 저는 칠이 전문이고 전에 같이 있던 그 동생 연결해줄테니 이야기해봐요"

엉겁결에 동생분과 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분 말씀은 이랬다.

  • 요즘 차는 알루미늄이거나 강화 철판이라 쉽지가 않다.
  • 특히 당신 수리 부위는 공구가 안들어갈 확률이 높다.
  • 수리가 되면 우리는 25만원

생각해본다고 말씀드렸다.

3. 사건의 결말

곰곰히 생각해봤다. 차를 2일이나 못 쓴다. 그리고 20-30만원 지불해야 한다. 돈은 내가 내는데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특히 내 차가 수리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 볼보 때도 마찬가지였다. 뭐만 하려고 하면 그 놈의 볼보, 볼보. 볼보라서 안된다. 볼보라서 비싸다. 어찌보면 나는 경험이 좀 있는 사람이었다. 책상에 앉아 어려운 걸 어떤 사람이 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차분히 생각해봤다. 잠시 후 세 단어가 떠올랐다.

장. 한. 평

옛말에도 컴퓨터는 용산으로, 오도바이는 충무로로, 스키는 학동으로, 자동차는 장한평으로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 가보자. 장한평 검색 돌려보니 몇 군데 바로 나왔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는데 신중한 사장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작아보이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직접 봐야 알겠습니다'

바로 장한평으로 향했다.

파판7

장한평에 도작하자 날씨마저 우중충하니 마치 신라컴퍼니 심장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신라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게 구불구불 조심조심 골목길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내 앞차도 나와 똑같은 덴트집에 주차를 했다. 허름한 가게에는 이미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내 차 상태를 진단하셨다.

"음. 작지만 깊네요. 장비가 들어가면 쉽게 될거고 안들어가면 안돼요. 1시간만 주세요"

"비용은 어떻게 될까요?"

사장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되면 5만원만 주세요"

나는 사장님 쿨내에 쓰러질 것 같았다. 마라향 같기도 하고 코가 얼얼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천천히 오세요"

미친 속도였다. 나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아서 경보로 칼루이스처럼 걸어갔다.

오 마이 갓

jhp

사진에는 perfect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짝 보인다. 째려보면 보인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공구가 안들어가서 애먹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주 얇은 공구로 펴야해서 완전히 펼 수 없으셨다고 힘없이 말씀하셨다. "조금만 큰 공구가 들어갔으면...."이라면서. 나는 사장님 말씀 끝나기도 전에 바로 주머니에서 현금 5만원을 꺼내어 드렸다.

사장님은 5만원 다 받는 게 좀 미안한 눈치였다. 동시에 내 머리 속에는 10만원 드린다고 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100% 만들어 주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너무 좋았다. 30분~40분만에 95%이상 수리가 5만원에 끝났다. 5%를 위해 최소 15만원과 24시간을 더 써야하는 것을 이렇게 선방한 것은 5만원 이상의 값어치였다.

4. 시사점

나는 오늘 집에 돌아오면서 숨고,카닥과 같은 서비스들의 약점에 대해 생각했다. 카닥과 숨고는 웹서비스를 위해 일정한 포맷을 만들었다. 이 포맷에서는 사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한다. 그래서 작업자는 보수적이 되고 소비자는 그만큼 순간적이고 계산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 온라인에서 사진만 보고 5만원, 1시간 안에 수리한다고 말했다가 실제로 수리가 5시간이 걸리면 작업자는 큰 손해다.
  • 동시에 나처럼 소비자는 좀 더 작업자와 이야기할 생각보다는 다른 대안들을 검토하게 된다.
  • 나아가 작업자들은 더 많은 다른 작업자들과 무한 경쟁해야 한다.
  • 그 결과, 수주할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 수주 확률이 떨어질 수록 점점 더 플랫폼 의존적이 된다.(광고비를 쓰게 된다)
  • 결국 증명사진처럼 한 건의 비용을 올려서 수익을 보전할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인건비가 올라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한다.

지난 번에 생태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태계가 구성되려면 "자본의 민주적 분배"가 필수적인 요소이다. 카닥과 숨고 방식이 자본의 민주적인 분배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자본 만능적 분배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민주적으로 보이나 자본의 크기에 따라 분배가 결정되는 착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에서나 볼 수 있는 악랄한 구조이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소비자마저도 장기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카닥, 숨고와 같은 플랫폼 설계는 아주 단기적인 생태계를 구현한 것이다. 마치 샤알레 안에 들어있는 식빵에 핀 곰팡이처럼 증식하다가 결국 둘 다 말라죽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철학적인 내용을 숨고나 카닥 사람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팩트, 오늘은 숨고, 카닥을 장한평이 압살한 날이다.

jhp

#오늘우리는

지난 에세이

3월 3일·편집장

에라이. 트럼핑

#오늘우리는

트럼프 폰(T1)이 출시됐다. HTC U24 Pro와 하드웨어가 판박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사실상 ODM 화이트라벨 제품(중국..산?)을 금색 케이스와 성조기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기술적 독창성은 사실상 제로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트럼프 진영에게는.

트럼프의 장사법

트럼프 측이 폰을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지지자 기반의 팬덤 경제 수익화, 그리고 빅테크 대안이라는 이미지 구축.

라이선스만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구조이니 리스크는 낮다. 거기에 '47 플랜'이라는 월 $47.45짜리 요...

2월 28일·편집장

잘 가시요 T맵

#오늘우리는
지도 빗장이 풀렸다.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정부가 보안 시설 은폐 등을 조건으로 1:5000 축적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기사 내용](https://www.getpaper.xyz/p/%ED%92%80%EB%A0%A4-%EB%B2%84%EB%A6%B0-%EC%A7%80%EB%8F%84-%EB%B9%97%EC%9E%A5%EB%84%A4%EC%B9%B4%EC%98%A4-%EC%95%88%EB%B0%A9-%EC%82%AC%EC%88%98-%EB%B9%84%EC%83%81-mm5ft...

2월 27일·편집장

AI시대에 필요한 것은 거시적 시력 with 네이처논문

#오늘우리는
운동화 삑삑 소리의 물리학, 그리고 AI가 바꿀 소음 진단의 미래

지난주 네이처에 재미있는 논문이 올라왔다. 하버드의 재료과학자 Adel Djellouli가 보스턴 셀틱스 경기를 관람하다가 농구화의 '삑삑' 소리에 호기심을 품고 연구실로 돌아가 운동화를 유리판 위에서 밀면서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신발 밑창이 바닥과 마찰할 때 시속 300km에 달하는 파동형 변형이 밑창을 가로질러 쓸고 지나가며, 이 파동이 반복되는 주기가 우리가 듣는 삑삑 소리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지진의 전파 메커니즘과 ...

2월 25일·편집장

Copy is All You Need

#오늘우리는
베끼기의 역사, 그리고 D램 파티의 끝

앤스로픽이 2월 23일, 딥시크·문샷AI·미니맥스 등 중국 AI 기업 3곳을 공개 지목했다. 허위 계정 2만 4천 개를 통해 자사 모델 클로드와 1,600만 건 이상의 대화를 생성하고, 그 응답 데이터를 자체 모델 훈련에 전용했다는 것이다.

핵심은 '증류(distillation)'다. 상위 모델의 추론 과정을 하위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전환하는 기법으로, 본래는 자사 모델의 경량화에 쓰인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이 이 기법을 경쟁사 모델에 대규모로 적용했다는 것이 앤스로픽의 주장이다. ...

2월 24일·편집장

어텐션 비즈니스의 인지심리학: 스키너의 비둘기에서 틱톡의 당신까지

#오늘우리는
무한스크롤이 당신의 뇌를 망가뜨린 방법 — 그리고 당신은 이미 모른다

2006년, 한 젊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가 짜증을 냈다. MapQuest에서 지도를 옆으로 이동하려면 매번 "다음 페이지" 버튼을 클릭하고 페이지가 새로 로딩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블로그 글을 읽다가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지 끝에 도달하면 "2페이지"를 눌러야 했다.

그의 이름은 아자 라스킨(Aza Raskin). Mozilla Labs의 UX 책임자이자 Firefox의 크리에이티브 리드.

그리고 그의 아버지 젭 라스킨(Jef Raskin)은 App...

2월 23일·편집장

AI세상만사 2편. Claude만도 못한 X

#오늘우리는

지난화. 캔바만도 못한 X

최근에 가장 많이 보이는 글 유형 유형1. 감상파

최근 일주일 동안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오직 대화만으로 서비스를 빌드하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을 실천하며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예전처럼 복잡한 문법이나 아키텍처를 고민하는 대신 내가 원하는 기능의 '결'과 '바이브'를 AI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상용 수준의 코드가 쏟아져 나오는 경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엔지니어의 숙명은 로직을 짜는 것이 아니라...

2월 22일·편집장

AI세상만사 1편. 캔바만도 못한 X

#오늘우리는
FOMO

FOMO(Fear Of Missing Out)는 대세에서 소외되거나 흐름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뜻하는 심리 현상이다. 그리고 FOMO는 어느 시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요즘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또는 유튜브나 쓰레드를 보면 내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FOMO가 대중적인 감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보자. 이제 그 누구도 Cusor나 Coplilot를 말하지 않는다. n8n은 몇 달전에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 었다. 유튜버 노마드코더가 당장 n8n을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이 불...

2월 19일·편집장

몰락양반과 갖바치의 모험 4화

#몰락양반과갖바치의모험
4화 No woman, No cry

퇴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고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영업 책임자는 무능해보이고 영업담당자는 기가 죽어 있다. 사내에서 의견을 주고 받는 방식은 완전한 K-에자일 방식의 단점으로 응집되어 있다. 아직 대표와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진 못 했지만 여기까지만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이미 견적을 내기에 충분했고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입장으로 갈려 기싸움 중이었다.

상범의 내면1:...

2월 13일·편집장

몰락양반과 갖바치의 모험 3화

#몰락양반과갖바치의모험
3화 스크럼 "오전 스크럼 들어가시죠. 상범님"

출근해서 어제 보던 자료들을 하나씩 열고 있는데 플랫폼팀 리더 노영일이 말했다.

아직 분위기도 좀 익히셔야 하고 저희팀 스크럼에 들어오시죠

네 좋습니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크럼, 이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추억의 단어다. 지금 여기 직장인들이 초등학생일때부터 나는 스크럼을 접해왔고 스크럼이 무엇인지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LG전자 초기 시절, 당시 상황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당시에는 사업적...

2월 12일·편집장

PO시리즈 1화, 머리가 아픈 K-에자일

#오늘우리는
K-에자일

나는 이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원문을 읽어봤습니다. 직접 상황에 처해보기도 해서 매우 공감하게 됩니다. 글에서 지적하신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전통적인 조직 구조가 가지는 의미를 무시하고 K-애자일이 한국에 이식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봅니다. 대기업에서 PO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사람이 본부장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없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것을 토스 이승건 대표가 PO를 강조하면서 저는 문화적으로 조금 뒤틀렸다고 봅니다. 댓글로...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