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평균을 구독했다
먼저 내가 요즘 만드는 서비스를 예로 깔아보겠다. "AI 보이스로 정보를 읽어주는 기능을 추가한다"는, 아직 머릿속에만 있는 모호한 기획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두 가지의 다른 과정이 있을 수 있다.
1) 스펙이 없는 상태. 머릿속엔 "정보를 받아서 사람처럼 읽어주면 좋겠다" 정도뿐이다. 여기서 클로드코드한테 곧장 "이거 만들어줘" 하면 룰렛이 돌아간다. 본문 길이 제한은? 두 목소리의 대사 분배 규칙은? TTS가 실패하면? 이걸 AI가 다 추측해서 코드를 짜고, 나는 결과를 보며 "아 이게 아닌데" 하고 다시 던진다. 무한 루프다.
2) — AI를 코드 생성기가 아니라 '스펙 빚는 파트너'로 쓴다. 이렇게 쓴다.
정보 1건을 두 보이스가 사람처럼 읽어주는 기능을 만들려고 해.
PO 역할로 나한테 질문을 던져서 모호한 부분을 다 드러내줘.
그다음 User Story와 엣지 케이스로 정리해줘.
그러면 AI가 내가 안 정한 것들을 끄집어낸다. 본문 최소·최대 글자 수, 두 보이스의 분배 기준(번갈아? 역할 분리?), TTS 실패 시 재시도와 폴백, 생성 비용 상한, 오디오 캐싱 여부. 이 문답이 곧 모호함을 구조로 바꾸는 변환이다.
이런 식의 '역할놀이 체인'이 요즘 유행이다. 이걸 부르는 이름은 분기마다 새로 생긴다.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하네스 엔지니어링, 루프 엔지니어링, 그리고 AWS가 민 AI-DLC까지. 거창한 이름이 줄줄이 붙지만 뿌리를 캐보면 2022년에 나온 ReAct 같은 옛날 패턴의 재포장이다. 어쨌든 써보면 뭔가 대단한 기술을 손에 쥔 기분이 들고, 개발이 분명히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건 양면적이다.
평균을 보장한다는 것
먼저 분명한 장점. 초보로 채워졌거나 실력이 들쭉날쭉한 팀에게, 이 체인은 평균적인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구간을 AI가 메워 바닥을 끌어올린다. 이건 진짜 가치다.
그런데 이 장점이 등을 돌리는 순간 거기 심연이 있다. 지금 세상은 전문가인 척하는 초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초보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AI로 대체하는 행위를 '기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메우는 것과 갖추는 것은 다른데, 평균이 보장되는 순간 그 둘의 경계가 지워진다. 결과물만 보면 구분이 안 되니까.
AI는 평균을 판다
AI로 뭔가 만들어본 사람은 다 안다. 지금의 AI는 자신이 학습한 것 이상을 내지 못한다. 정확히는, 학습한 것들의 중앙값을 낸다. 그래서 세상에 이미 흔한 문제에는 무난한 답을 주지만, 내가 풀려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 — 남들이 아직 안 풀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그 문제 — 에는 괜찮은 기획을 못 내놓는다. 범용 AI가 주는 건 모든 것의 평균이고, 가끔은 그 이하다.
증거는 멀리 있지 않다. 대AI 시대가 열리고 모두가 폭발적으로 '자기만의 제품'을 찍어내지만, 정작 돈을 벌거나 흥했다는 소식은 드물다. 네이버와 무신사를 거쳐 나온 한 개발자가 쓰레드에 솔직하게 적었다. AI로 앱을 40개 만들었는데 결산해보니 오히려 44만 원이 손해였다고. 만든 사람이, 그것도 출신이 또렷한 사람이 직접 적은 숫자다.
그런데 같은 피드를 조금만 위로 올리면 정반대의 이야기가 흐른다. 18살이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었다, 누구는 월 1억을 번다, 그리고 그 비법을 가르친다는 강의가 끝없이 따라붙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강의들은 대부분 거짓이다. 요즘은 그 거짓말쟁이들을 추적하는 게 하나의 콘텐츠 장르가 됐을 정도다. 팔리는 건 제품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면 돈을 번다는 환상'이고, 그 환상을 파는 사람만 실제로 돈을 번다.
보이는 건 전부 승자이거나, 승자가 되는 법을 파는 사람이다. 44만 원을 잃고 그걸 정직하게 적는 사람은 알고리즘에 잘 안 뜬다. 이게 생존자 편향의 교과서적 풍경이다. 평균을 보장하는 도구로 모두가 평균짜리 제품을 쏟아내면, 평균은 더 이상 차별점이 아니다. 그건 그냥 바닥의 새 이름이다.
핵심 가치를 외주 주지 마라
그럼에도 인터넷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기술'에 열광한다. 나는 그게 생경하다.
나라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핵심 가치를 AI에게 외주 주지 않겠다. 그 역할을 진짜로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존경과 배움을 두고, 그 사람을 알아볼 안목을 기르는 데 시간을 쓰겠다. AI는 그다음에 배치하는 것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핵심을 내가 쥐고 주변을 AI로 두는 것과, 핵심을 AI에 맡기고 내가 주변을 도는 것은 겉보기에 같은 결과물을 내도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는 내가 성장하고, 후자는 내가 멈춘다.
그러나 현재 세상은 더 빨리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 하고, 더 쉽게 결과에 닿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 강하게 핵심을 외주화한다. 더 고약한 건, AI 구독료를 냈다는 이유로 그걸 외주화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드를 긁었으니 내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구독은 소유가 아니다. 매달 결제되는 평균에 접속할 권리를 산 것이지, 그 평균이 내 실력이 되는 건 아니다. 결제를 멈추는 순간 남는 게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진짜 자산이다.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이제 MVP는 방구석에서도 나온다. 적절한 역할놀이 체인 하나면 초보도 운영 단계까지 평균치를 친다. 이건 되돌릴 수 없는 변화고,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단순한 제품을 굳이 팀으로 모여서 만든다면 그건 그 집단의 지능을 의심케 하는 일이 됐다. 혼자 구독 몇 개로 닿을 수 있는 곳에 사람을 모으는 건 낭비다.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클로드든 제미나이든 코덱스든 구독만으로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도구로 돌아오지 않는다. 평균이 공짜로 깔린 세상에서, 평균을 넘는 그 한 끗을 나는 어디에 두고 있는가. 구독 계정 안인가, 내 안인가. 당신이 구독한 것이 평균이라면, 차별점은 구독 바깥에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