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체는 못생겼다. 그런데 화살이 틀렸다.
페라리가 첫 전기차 루체(Luce)를 공개한 뒤로 시끄럽다. 못생겼다는 말이 대부분이고, 나도 동의한다. 다만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느끼는 이유와, 그 책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거의 정리되지 않은 채로 비난만 돌아다닌다. 감정은 이해가 되는데, 화살의 방향이 틀렸다. 정리해보자.
1. 먼저, 사진 문제는 짚고 넘어가자. (.feat 나쁜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례감이다. 좋은 디자인이라도 플랫폼이 바뀌면 전혀 다르게 읽힌다. 볼보가 P3 플랫폼을 쓰던 시절의 디자인 언어는 소형 해치백에는 잘 맞았지만, 같은 어법을 SUV나 세단에 얹으면 어색했다. 형태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크기와 용도가 그 어법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볼보 디자인이 굉장히 칭찬받고 있었고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잉헨라트가 부임하자마자 볼보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싹 갈아 엎은 것이다. 특정 차량에서 좋은 디자인과 전 모델에서 좋은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디자인이다. (현대자동차로 이야기하면 아주 할말이 많아지는 지점이지만 여기서는 볼보만 이야기하겠다)

루체도 같은 함정에 빠졌다. 이 차는 5미터가 넘는다. 거대한 차다. 그런데 조형 어법은 작고 둥근, 거의 경차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큰 덩치에 작은 차의 표정을 입힌 셈이다. 이런 차일수록 사진 연출에서 스케일을 의도적으로 살려줘야 한다. 옆에 사람을 세우거나, 지형지물을 배치하거나, 보는 사람이 "아, 이게 이렇게 큰 차구나"를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런데 공식 이미지들은 텅 빈 공간에 차만 덜렁 놓는다. 그러니 비례감을 느낄 단서가 없다. 작아 보이고, 작아 보이니 더 못나 보인다. 디자인의 절반은 어떻게 보여주느냐인데, 그 디테일을 놓쳤고 몰매를 맞기 시작했다.
2. 진짜 원인은 디자이너다 — 그리고 그 디자이너는 아이브가 아니다
사람들은 조너선 아이브를 깐다. "애플 디자이너가 페라리를 망쳤다"는 프레임이다. 나는 이 프레임이 게으르다고 본다.
루체의 외관은 아이브의 작업으로 보기 어렵다. 너무 조잡하다. 반대로 마크 뉴슨의 작업으로 보면 너무 그럴듯하다. 공개된 인터뷰와 보도의 역할 분담도 이쪽을 가리킨다 — 아이브는 콕핏과 인터페이스, UX에 집중했고, 외관의 글래스하우스(유리 캐빈) 콘셉트를 설명한 건 뉴슨이다. 즉 거칠게 말하면 외관은 뉴슨, 내부는 아이브다. 그리고 이 구분이 중요하다.
아이브는 수준 높은 산업 디자이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 아니라 철저한 모더니즘 계열이다.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지가 분명한 사람이다. 보통 디자인 업계에서는 그런 작업을 보고 "디자인을 잘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 외관을 주도했다면 결과물이 이렇게 나오기 어렵다.
3. 뉴슨의 이력서를 보자
마크 뉴슨은 산업 디자이너로 불리지만, 출발은 산업이 아니었다. 시드니 미대에서 조각과 주얼리를 했고, 가구와 한정판 오브제로 이름을 얻은 사람이다. 양산을 훈련받은 적이 없다. 명문 디자인스쿨 엘리트도 아니다. 가구·오브제 셀럽이 명성과 인맥을 타고 산업 디자인의 상층부로 올라간 케이스에 가깝다.
그는 자동차도 처음이 아니다. 1999년 포드 021C 콘셉트를 디자인했다.


내가 지적하려는 건 다른 것이다. 마크뉴슨의 디자인 문법은 가구 디자이너의 문법이다. 오브제로서는 매력적일 수 있어도, 5미터짜리 양산차의 스케일과 패키징, 양산 제약 위에 그대로 얹으면 무너진다. 콘셉트 오브제에서 통하던 순수 조형이, 실차의 물리량 앞에서 비례를 잃는다. 루체 외관이 정확히 그 모양새다.
4. 이건 디자인계의 오래된 풍경이다
지금 2026년엔 인플루언서가 되겠다고 거리에서 더 자극적인 짓을 경쟁적으로 한다. 디자인계엔 이 풍경이 훨씬 일찍 왔다. 20세기말 모더니즘이 저물 무렵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즉 기존 디자인 언어에 반발하던 흐름에서 "다름을 위한 다름"과 노골적인 레퍼런싱을 목적 자체로 삼는 디자이너들이 대거 나왔다. 그들 다수는 결과물이 아니라 태도와 화제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 구조와 똑같다. 명문대 중퇴 → 유튜버 → 빅테크 경력 → 프리랜서 강연자로 이어지는 명성 회로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우리가 "유명하다"고 부르는 디자이너들 중 결과물이 늘 좋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5. 좋은 컨셉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내가 학교에서 가르칠 때 늘 강조했던 게 있다. 컨셉 디자인은 "아무거나 멋있게 그리는 일"이 아니다. 컨셉 디자인은
현재의 기술 수준을 충분히 고려한 위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 발 앞선 모습을 제시하는 일
양산 가능성을 무시한 채 그림만 그리는 건 컨셉이 아니라 일러스트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예는 폴스타2다.(폴스타4, 5 아니다) 볼보 콘셉트 40.2를 거의 그대로 양산해냈다. (미친 놈들)
6. 언론이 놓친 진짜 이야기
언론은 이 소동을 "애플 vs 페라리"로 묶어 애플을 흠집 내는 데 쓴다. 그게 더 자극적이니까. 하지만 이건 애플이 페라리를 망친 이야기가 아니다.
확인해보면 이 협업은 디자이너의 영업으로 성사된 게 아니다.
페라리·엑소르의 회장 존 엘칸이 먼저 제안한 톱다운 결정
아이브와 뉴슨은 엘칸과 오랜 친구이자 페라리 오너·컬렉터였고, 엘칸은 적당한 프로젝트만 나오면 함께 일할 사람들이라고 오래전부터 봐왔다. 채용 결정은 회사 최상층에서 내려왔다.
이 사실이 다른 질문 하나를 자동으로 풀어준다. 그 콧대 높은 페라리는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나? 오너 회장이 자기 친구를 직접 데려온 구조였기 때문이다. 마초니가 이끄는 인하우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회장이 모셔온 외부 거장의 외관을 뒤엎을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맥이 무기라는 말은 맞다. 다만 그 인맥의 핵심 고리는 뉴슨이 아니라 엘칸이다. 아이브와 뉴슨이 30년 지기 절친이라는 점, 그리고 둘 다 엘칸의 오랜 친구라는 점, 결국 이 차를 만든 건 결국 디자인 심사가 아니라 관계망이다.

마치며
디자이너는 인간의 허영심을 이용한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기술이다. 좋은 디자이너는 허영을 정교하게 설계해 욕망을 만든다. 그러나 본 실력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허영심만으로는 가릴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지금 루체의 익스테리어가 딱 그 상태다.
그러니 비난은 정당하다. 다만 화살은 "애플이 망쳤다"가 아니라, "양산을 모르는 가구 어법을 오너의 인맥으로 5미터짜리 페라리에 얹었다"를 향해야 한다. 그게 더 정확하고, 솔직히 더 흥미로운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