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와 스타트업 불화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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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X에서 창업가들이 잠든 VC, 텀시트 서명 후 잠적, 미투자 상태로 인수대금 요구 같은 잔혹사를 실명까지 걸고 폭로했지만, 무례함은 증상일 뿐이고 진짜 병은 양쪽 모두의 자의식 과잉이다. 대표 대부분은 평범하면서 스스로를 대단하다 믿는 부류이고, VC(마름) 대부분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쩐주의 돈으로 권력과 수수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현대는 자본을 신으로 모시는 '자본사회'라서 자원을 독식한 쪽이 결과를 조작할 수 있고, 그래서 VC는 깜이 안 되는 대표(B)에게도 일단 돈을 몰아준 뒤 실패하면 안 되는 존재로 만들어 계속 떠받친다 — 소프트뱅크–위워크, 세쿼이아–FTX가 그 증거다. 그 결과가 "95% 실패하고 1개의 대박을 노린다"는 VC의 파워 로 논리인데, 이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선구안 부재의 포장이며, 어떤 가수가 나와도 일정 수익률을 돌려주는 시스템이 된 K팝이 진짜 투자 산업의 반례다. 양적완화와 취업난이 만든 자의식 과잉의 양면 시장이 불황으로 평형이 깨지자 서로 비난이 터진 것일 뿐이고, 그 밑바닥에는 쩐주·마름·대표 모두의 "일 안 하고 편하게 놀고먹고 싶다"는 동일한 욕망이 있다.

#오늘 우리는

VC 잔혹사 폭로전, 논점은 자의식 과잉이다

사이좋게 지내
사이좋게 지내

지난주 X(구 트위터)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VC 잔혹사 폭로전이 벌어졌다. 시작은 Late Checkout Studio의 Greg Isenberg였다. 1,500만 달러 규모 시리즈 A 피칭 자리, 12명이 동석한 미팅에서 상위 VC의 제너럴 파트너 한 명이 30분 넘게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올라오자 둑이 터졌다. Zynga 창업자 Mark Pincus는 잠든 VC를 보며 "영화 '베르니의 주말'과 실리콘밸리의 만남 같았다"고 거들었고, WayUp 공동창업자 Liz Wessel은 피칭 내내 졸던 마이더스 리스트 투자자가 미팅 두 시간 뒤에 텀시트를 보내왔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Uber의 Travis Kalanick은 미팅을 피해 도망가는 VC를 주차장까지 쫓아가 조수석에 올라타고 피칭을 마쳤다고 했다. 전 a16z 파트너 Arianna Simpson은 "VC들 사이에 기면증이 유행이냐"고 자기 업계를 조롱했다.

졸음은 차라리 귀여운 축이다. 텀시트에 서명까지 해놓고 송금 직전에 잠적한 VC, 투자도 안 했으면서 그 회사가 나중에 인수되자 인수 대금의 지분을 요구한 VC, 정기적인 사업 업데이트와 추천인 역할을 당당히 요구한 VC의 사례까지 줄줄이 폭로됐다.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TechCrunch가 이를 기사로 정리하면서 논란은 업계 전체로 번졌다.

이 폭로전을 보며 두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 한국만 VC와 창업가의 사이가 나쁜 게 아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고, 지금 온라인에서 끝없이 다투고 있다. 둘째, 그런데 논점이 잘못되어 있다. 무례함은 증상이지 병이 아니다. 잠든 파트너를 깨운다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핵심 화두은 자의식 과잉이다

투자받는 쪽의 해부

투자를 받으려는 기업 대표부터 이야기하자. 대표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스스로 대단한 아이디어와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대표다. 다른 하나는 정말 대단한 실행력, 또는 인간관계, 또는 기술력을 가진 대표, 그러니까 적어도 한 분야에서 1등이 될 만한 능력을 하나 이상 가진 대표다. 당연히 전자가 압도적으로 흔하고 후자가 드물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둘 모두 투자를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점이다. 욕망의 크기만 보면 두 부류는 구분되지 않는다.

투자하는 쪽의 해부

투자하는 쪽은 좀 더 복잡하다. 여기는 먼저 실제로 돈을 대는 쩐주와, 그 돈을 집행하는 마름으로 나눠야 한다.

1. 쩐주

쩐주의 욕망은 단순하다. 패시브 인컴,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늘어나는 수입이면 된다.

연기금이든, 모태펀드든, 대기업 LP든, 패밀리오피스든 본질은 같다.

2. 마름

마름의 욕망은 복잡하다. 남의 돈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중간에서 큰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있고, 정말 기업 투자를 통해 사회 공헌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 욕구들이 한 사람 안에 집중되기도 하고, 일부가 뒤섞여 있기도 하다. 이 마름의 집단이 바로 우리가 VC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속해 있다.

그런데 이 VC들 역시 기술이나 사업을 정말 잘 아는 사람과, 모르지만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나뉜다. 당연히 대부분은 후자다. 그래서 VC는 심사역을 두어 자신의 부족함을 시스템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나 심사역 역시 마찬가지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으며, 좋은 사람은 드물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와 결합되는 순간, 이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사회다

마이클 샌델의 진단을 빌리면,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다. 자본을 도구로 쓰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을 신으로 모시는 "자본사회"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넘어, 시장이 사회 자체가 되어버린 상태다.

자본사회에서 시장의 자본을 독식하는 일은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포커를 생각해보자. 판돈이 압도적으로 풍부한 플레이어는 패가 나빠도 이긴다. 베팅만으로 상대를 테이블에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자본사회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자원을 독식한 쪽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

기대주 B의 우화

이해를 돕기 위해 대기업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당신이 대기업 직원이고 팀 내 기대주 A라고 해보자. 그런데 회사가 기대주 A와 B에게 프로젝트를 차별적으로 부여한다. A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B에게는 아주 빛나는 프로젝트를 준다. 참고로 이것은 대기업에서 성과 밀어주기를 할 때 아주 흔하게 쓰는 방법이다. A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프로젝트는 그저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A는 그냥 실패자가 된다.

이번에는 B의 입장이다. B가 능력이 있어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운과 실력이 맞아떨어진 것이니 문제가 없다. 심각한 문제는 B의 능력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B에게 프로젝트를 몰아준 사람은 B가 반드시 성공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생긴다. 그래서 B가 실력이 없으면 성과가 나오도록 어떻게든 지원한다. 사람이 부족하면 사람을 더 붙이고, 예산이 부족하면 예산을 증액한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부서와 더 많은 임원들이 한 배에 올라탄다. 그래서 어느 순간 B는 실패하면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모두가 B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모두가 B를 지원한다.

대기업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사회의 보편적 모순이다. 여기서 B를 "투자받는 기업 대표"로, B에게 프로젝트를 몰아준 사람을 "VC"로, 대기업 회장님을 "쩐주"로 치환해보라. 벤처 생태계의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실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소프트뱅크는 위워크의 아담 뉴먼에게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더 크게, 더 미치게" 하라고 부추겼다. 위워크의 사업 모델이 부동산 전대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미 너무 큰돈이 들어가 있어서, 뉴먼은 실패하면 안 되는 B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쿼이아는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가 투자 피칭 도중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도 잠든 것은 VC만이 아니었다. 그를 천재의 증거로 해석한 찬양 일색의 인물 기사를 자사 홈페이지에 실었다. FTX가 무너지자 그 글은 조용히 내려갔고 2억 달러 이상이 사라졌다. B를 밀어준 사람은 B의 결함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95% 실패라는 비즈니스 모델

그러니까 이 판은, 준비되지 않은 대표들의 자의식 과잉과 VC들의 자의식 과잉이 자본사회 안에서 평형을 이루며 만들어낸 일종의 오케스트라다. 대표 대부분은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스스로 과잉 진단하고 있고, VC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그 두 과잉이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된다.

이 평형의 결과가 바로 VC 업계가 자랑처럼 말하는 그 숫자다. 투자의 95% 이상이 실패하고 1~5%의 성공률을 보이지만, 한 개의 대박이 전체를 보상한다는 파워 로(power law)의 논리. 이것을 정상적인 사업의 언어로 번역해보자. 내가 쿠팡에서 매년 50억 원어치 물건 수백 종을 판다. 그 제품들이 다 실패하고, 그중 한 개가 대박이 터져 51억의 매출을 올린다. 미친 소리 같지만 실제 이런 일을 하는 사장님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50억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게 낫지 않은가? 다른 어떤 산업에서 95%의 불량률을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모델이 아니라, 선구안이 없다는 사실의 우아한 포장이다.

너무무서워
너무무서워

반례가 무엇인지 보면 더 분명해진다. K팝이 글로벌 비즈니스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BTS 같은 슈퍼스타가 나와서만이 아니다. K팝이라는 장르가 어떤 가수를 데뷔시키든 일정한 수익률을 시장에 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고, 그 수익률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발굴, 트레이닝, 제작, 유통이 재현 가능한 파이프라인으로 표준화되자 자본은 개별 아티스트가 아니라 시스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진짜 투자 산업은 이렇게 작동한다. 한 발의 홈런을 기도하는 산업과, 타율을 관리하는 산업의 차이다.

평형이 깨질 때

그렇다면 이 기괴한 평형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공급 측에서는 미국의 양적완화, 코로나 테크붐, 부동산 가치 하락이 맞물리며 쩐주들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나섰고, 거기에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이 마름을 섰다. 수요 측에서는 취업난과 기술의 민주화가 맞물리며 자의식 과잉된 대표들이 양산되었다. 이렇게 양면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돈은 갈 곳을 찾고, 자의식은 돈을 찾고, 마름은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찾았다.

그리고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평형이 깨졌다. 투자가 잘 될 때는 VC 밑에서 숨소리도 못 내던 사람들의 비난이 지금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X 폭로전이 정확히 그 장면이다. 잠든 파트너, 잠적한 텀시트는 호황기에도 있었다. 다만 그때는 아무도 실명을 걸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따져드니 VC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애초에 깜도 안 되는 B에게 프로젝트를 몰아주었던 것을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이제 와서 비난이냐는 것이다. 혹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아, 새로 만난 너는 깜이 아니구나" 하면서. 그래서 양쪽에서 인성 논란까지 터지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창업가는 VC의 무례를 폭로하고, VC는 창업가의 무능을 냉소한다. 둘 다 맞는 말이라는 게 이 싸움의 비극이다.

즉문즉설

병원에 가보세요
병원에 가보세요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맨 아래에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나 나올 법한 사연이 자리 잡고 있다.

"스님, 저는 일 안 하고 편하게 놀고먹고 싶습니다."

쩐주는 신경 안 쓰고 돈이 불어나길 원하고, 마름은 남의 돈으로 권력과 수수료를 원하고, 준비 안 된 대표는 검증 없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길 원한다. 셋의 욕망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문장이다. 잠든 파트너를 깨우고, 잠적한 VC의 실명을 박제하는 것은 통쾌하지만, 그것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 무례는 증상이고, 병은 자의식 과잉이며, 병상은 자본사회이기 때문이다.

폭로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호황이 오면, 모두가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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