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벌 세탁, 종결
학벌 세탁의 부당함을 묻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열위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며칠 사이 타임라인이 한 단어로 뒤덮였다. 학벌 세탁.
다들 화가 나 있는데, 정작 그 단어가 뭘 가리키는지는 아무도 정의하지 않는다. 분노만 있고 정의가 없으면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 싸움은 길어지고 결론은 안 나고 분노만 깊어진다. 그러니 정리부터 하자.
학벌 세탁이란 무엇인가
학벌 세탁은 다음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때 성립한다.
- 대입을 망쳤다. 그런데 다른 방법으로 그 실수를 만회했다.
- 만회한 이후, 만회한 학력만 이야기하거나 이전 학력에 대해 거짓을 말한다.
이 둘이 다 있어야 '세탁'이다.
그리고 '세탁'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자백한다. 빨래는 더러운 것을 빤다. 누군가의 학력을 '세탁'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전 학력을 '때'로, '얼룩'으로 규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단어 안에 이미 판결이 들어 있다.
그래서 다음 케이스는 학벌 세탁이 아니다.
- 이전의 부족한 학력을 솔직하게 말하는 경우
- 정당한 방법으로 학력 점프를 만들어낸 경우
세탁은 '숨김'과 '거짓'이 붙을 때만 세탁이다. 빨 때(얼룩)가 없거나, 빨았다고 거짓말하지 않으면, 그건 빨래가 아니라 그냥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옷 갈아입는 걸 두고 더럽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쁜 건가 좋은 건가
여기서 갈린다. 판단은 두 개의 축에서 이뤄진다.
- 정당한 방법으로 학력 점프를 만들었는가
- 자신의 학력에 대해 거짓을 말했는가
당연한 이야기다. 부당한 방법으로 만들었다면 나쁘다. 거짓으로 말했다면 나쁘다. 여기까지는 아무도 싸울 일이 없다.
거짓말은 드러나게 마련이라 보통은 시간의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부당한 방법'이 정확히 뭐냐는 것이다. 정확한 선을 긋기가 너무 어렵다. 다음의 케이스들을 읽어보고 스스로 한 번 판단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 개의 케이스
- 학부는 서울대·연고대를 못 갔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대학원에 갔다.
- 국내 대학을 못 가서 SAT를 보고 미국의 이름 없는 칼리지에 갔다가, 종합대학교로 편입했다.
-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서울대·연고대에 프리패스로 들어갔다.
- 전문대에서 하위권 학교로 학사편입하고, 거기서 상위권으로 재편입한 뒤, 석사·박사를 했다.
자, 어떤 게 부당한가? 골라보라고 하면 손이 잘 안 나간다. 넷 다 합법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강남에는 학력 점프의 뒷구멍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외국인 특별전형이나 체육 특기생으로 매일 밤 나이트를 가도 연고대에 붙었고 4B 연필을 어떻게 쥐는지도 모르는 애가 홍대 미대에 아무런 걱정없이 합격했었다. 그것마저 안 되면 호주-미국 또는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 몇 년 뺑뺑이를 돌렸고, 그 애들은 돌아와서 기득권이 되었다.
이걸 그냥 "부당한 방법"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이 방법들은 모두 다 합법이었다. 우리 사회 규칙 안에 있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그 규칙의 빈틈을 정확히 읽고 들어간 것뿐이다. 그게 비겁한가, 영리한가. 여기서부터는 답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답이 다르다는 것, 그게 이 논쟁의 건강한 출발점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 논쟁은 부당함을 다투지 않는다
학벌 논란 글을 수십 개 읽었다. 대부분의 논쟁은 부당함을 다투지 않았다. 열위를 다투고 있었다.
들어보면 이런 식이다.
- "학부는 개똥 같은 데 나왔으면서 어디서 서울대래?"
- "개똥 같은 학부에서 서울대 대학원 간 게 노력으로 된 거다. 그게 뭐가 문제냐?"
- "하위권 학교 나왔으면서 그것만 쏙 빼고 말하네?"
- "최종 학력이 중요한 거지. 말 안 하는 게 뭐 어때서?"
이 문장들을 가만히 보라. '그 방법이 정당했는가'를 묻는 문장이 하나도 없다. 전부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가'를 정하려는 문장이다. 나를 기준에 놓고 타인의 열등함을 말하거나, 타인을 기준에 놓고 나의 우등함을 말하고 있다.
주제는 학벌 세탁인데, 실제로 오가는 말은 서열 정리다.
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서 그렇다고 본다.
삶은 대입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고3 겨울에 매겨진 등수가 평생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시험지로 '공정하게' 치렀다고 믿는 그 한 번의 시험을 평생의 기준점으로 붙잡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보다 나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사회에서 나보다 잘나가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그 불편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결과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의 노력과 운과 전략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쟤는 학벌 세탁한 거야"라는 한마디면, 그가 만든 모든 것에 얼룩을 묻힐 수 있다. 대입의 등수만 남기고, 그 이후의 모든 분투를 지울 수 있다.
편한 일이다. 그런데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여기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 역시도 가방끈이 짧지 않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규칙 너머의 방식을 쓰는 사람들 (룰브레이커)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는 척하면서, 내 가치관으로는 세상을 망치는 짓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나도 마음이 불편하고 상실감이 크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 가치관에서 감정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달라야 한다.
그들이 나보다 더 낮은 학력을 가지고 있고 내가 지키고 싶은 지적인 기준에서 천박해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실제로 나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천박함은 내 취향의 판결이지, 세계의 판결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보면 이렇다. 모든 것을 지적으로 세련되게 처리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도 결과가 미약한 쪽은 나다. 우열을 정말로 따지자면, 열등한 쪽은 그들이 아니라 나일 수 있다.
우열은 학력 세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열은 학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대입의 등수로도, 30대의 박사 학위로도 아니다. 학벌 세탁이 우열을 세탁해주지도 않고, 학벌이 깨끗하다고 우열까지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제발, 학력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성취했다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냈다고 말하지 말자. 그건 인과가 거꾸로다. 학력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결과가 그 사람을 만든다.
남의 학부를 캐고 남의 세탁을 적발할 시간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아름답게 만들 궁리를 하자.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만이, 우열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