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양반과 갖바치의 모험 2화

편집장·

“사내 정치에서 밀려 스타트업씬에 와일드카드 리더진으로 들어온 대기업 부장(몰락양반)과 문과를 나와 SI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백엔드 개발자(갖바치)가 겪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본 글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에서 특정인, 특정회사와 상관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허구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몰락양반과갖바치의모험

2화, 세일즈팀

"아이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상범님"

세일즈팀 리더, 장성근은 190cm, 100kg가 넘는 거구였다. 나이가 들면 희한하게도 나보다 어린 사람의 나이를 꽤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장성근은 딱 보아 하니 90년생 정도로 보였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제스쳐도 시원했다. 그의 태도에서 나는 그가 자신을 육체적으로 강하게 봐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의 피부는 너무 하얀 색이었고 셔츠 사이로 보이는 몸은 물살로 보였다.

그가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말랑하고 두툼한 돼지족발손. 그것은 절대 운동한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나는 편안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지만 나와 시선을 맞추는 그의 눈에서 미약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짧은 순간 우리 두 사람 모두 많은 것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제가 스타트업은 처음입니다. 당장 아는 게 없을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배워야지요아하하하하하

갑작스럽고 과장된 웃음에 맞춰 나도 웃었다.

하.하.

근데 혹시 나이가~?

응? 나이가? 이 색히..말이 짧네? 뭔가 쎄한 마음이 들었다.

저는 79입니다.

네? 네? 79요?

아주 잠깐 0.0001초 표정이 일그러짐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이내 바로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면서 나름 개인기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블리치

그리고 말했다.

네. 79년생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태어났죠.

어우. 엄청 동안이신데요. 저는 92입니다.

그러고는 그는 다시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도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같이 잘 이겨 봅시다.

네. 리드님. 잘 해보시죠. 저희 팀원 소개를 좀 드려야하는데 지금 외근을 나가서....하아...타이밍이 좀 그렇네요. 문수님이라고 세일즈팀에 한 분 더 계십니다. 음...이따가 오후에 들어오실거니까 그 때 또...저희...한 번...네?...그쵸...? 그 때 우리...응...한 번 또 이야기...하시는 걸로. OK?

네. 알겠습니다. 성근님 참 재미있으시네요

아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좀 유머가...있죠. 아하하하하하하

나는 첫 만남부터 그가 불안했다. 세상 일이 다 그러하다. 돈에 관심없다고 하는 사람이 돈에 미친 사람이고 스스로 착하다고 하는 사람이 악인인 경우가 더 많다. 과장된 제스쳐는 대부분 흉한 것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전청조 같은 사람들에게 넘어가기엔 나는 너무나 오래 지옥 불길을 걸어 왔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앉은 셀은 그가 앉은 셀의 뒷쪽이었다. 나는 그의 뒷통수와 모니터가 보였다.

그는 좀 처럼 책상에 앉아있지 않았다. 나와 이야기한 뒤에 대표님 방에 가서 한 30분 있다가 둘이 같이 나오더니 대표님은 밖으로 나갔고 성근님은 탕비실에 가서 커피 한 잔 뽑아들고 이 자리, 저 자리 다니면서 농담 따먹기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전화가 와서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다른 직원을 불러서 담배 피우러 나갔다 들어와서 책상에 앉았다. 그 때 시간 11시 30분. 그의 확장 모니터에는 주식창과 비트코인 관련 유튜브가 떠있었다.

상범님. 식사하러 가시죠!

플랫폼팀 리더 노영일이다. 나는 그를 관찰하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우리 식사는...나가서 외부 식당에서 하는거죠? 제가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네. 맛있는거 먹으러가요

좋습니다

플랫폼팀, 개발팀 사람들과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오전에 경험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여졌다.

어떠세요? 첫 날이신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 더 고민이 되었다. 말을 슬쩍 던지면 이 궁금함은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속시원하게 확률이 정해질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런 내가 반나절만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세계를 몰라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일단 모른 척 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고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네. 상범님 온보딩하시는 동안에 편하게 어떤 일 하실 지 고민해보세요.

갑자기 개발팀 리더 박승철이 화제를 전환했다.

오픈클로(open claw) 써봤어요?

그러자 주니어 백엔드 개발자 혜훈님이 말했다.

제가 주말에 집에 남는 PC에 깔았는데 장난없어요. 대박. 한번 깔아보세요. 이제 다 알아서 PC가 해줘여. 엑셀에다가 복사 붙여넣기 하는 일이나 쇼핑 해야하는 거 얘한테 시켜만 놓으면 끝이에요. 끝!

대박!

사람들은 혜훈씨 이야기를 들으며 오픈 클로 이야기로 여념이 없었다.

상범님도 프로그래밍 하신다고 했죠?

그냥 조금요. 혼자 필요한 거 정도 만드는 용도로요

그럼 상범님도 한번 깔아서 테스트해보시면 어때요?

오. 좋다. 회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한번 검토해보시면 좋겠네요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범위에서 오픈클로 같은 AI에이전트는 책임이 따르는 창조적인 일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이것은 개념적으로 반복작업의 범위를 확장시킨 일종의 매크로라서 그렇다. 기술적으로 그 내부가 어떻게 되었건 그것은 지금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기술을 개발함으로서 나의 가치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이 회사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화에는 어떤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주제를 던지면 그 주제가 다시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린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지점은 그것이 단순히 신변잡기를 공유하는 대화를 넘어 공적인 회사 업무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다녔던 대기업이었으면 쌍욕을 먹고도 남았을 일이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던 회사였다면 나는 손에 잡히는 그 무언가를 그 자리에서 집어던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내 정치에 밀려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족한 것이 많고 부족한 채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정말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너는 좋은 결과를 몇 번이나 만들어 봤냐. 그러니 잘난 척하지말고 그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여기서 해내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 잡고 있는데 저 쪽 끝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했다.

"오픈클로가 나타나서 자신의 업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일이 반복업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일을 하던 사람이 남는 시간이 생겨서 창의적인 기획 업무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라고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 지리멸렬한 이야기에요."

이시다

잠시 공기가 멈췄다.

"오~ 맞네! 맞네! 역시 정훈님 똑똑하셔"

발빠르게 노영일이 맞받아쳤다. 어색함이 있었지만 오픈클로 이야기는 사라졌고 커피 마시러 가자는 주제로 빠르게 바뀌었다.

정정훈.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말한마디 없던 친구이다. 오전에 나를 보고도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래서 속으로 조금 괘씸한 마음이 있었다. 나도 거만하지만 나보다 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한 마디에 나는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동시에 조금 두렵기도 했다. 저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내 허접한 실력이 들통날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도 이렇게 날카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저런 휘몰아치는 생각들로 출근한지 반나절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는 소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서 책상에 앉았다. HR팀장이 읽어보라고 준 회사소개서와 IR덱 그리고 클릭업 문서와 노션 페이지 뭉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공식 문서는 레이아웃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온라인에 있는 문서들은 끝까지 제대로 씌여진 문서가 드물었다. 이 문서로는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서 정보를 얻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사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 내게 익숙하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조직 적응 방식이다.

그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사무실에 누군가가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말했다.

"헉헉. 안녕하세요", "후. 안녕하세요", "헉헉.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새로 온 김상범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세일즈팀 임문수라고 합니다"

"네. 말씀들었습니다. 외근 다녀오시는 가봐요?"

"네. 오늘 오전에 고객사 좀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 순간, 나는 영업자에게 물어보면 현재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문수님. 바쁘지 않으시면 차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럼요. 물론입니다. 가방만 좀 놓고 오겠습니다"

문수님이 가방 놓으러 자리로 간 사이에 점심 시간이 지난 지금, 저 쪽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성근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190cm의 키와 100kg의 거구는 저 멀리서도 위압적으로 보였다. 무엇이 기분이 그렇게 나쁜지 인상을 푹 쓰면서 전화를 하다가 "네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릴게요."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문수님을 향해 이리 오라는 의미로 손을 들어 까딱 까딱 손짓을 했다. 문수는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상범님. 이따가 이야기 해도 될까요? 지금 좀..."

"물론입니다. 어서 가보세요. 저는 시간 많습니다."

성근님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고 급하게 문수님은 뛰어나갔다.

-3편에서 계속..................

댓글

이 에세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댓글 (0)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