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스크럼
"오전 스크럼 들어가시죠. 상범님"
출근해서 어제 보던 자료들을 하나씩 열고 있는데 플랫폼팀 리더 노영일이 말했다.
아직 분위기도 좀 익히셔야 하고 저희팀 스크럼에 들어오시죠
네 좋습니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크럼, 이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추억의 단어다. 지금 여기 직장인들이 초등학생일때부터 나는 스크럼을 접해왔고 스크럼이 무엇인지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LG전자 초기 시절, 당시 상황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당시에는 사업적으로 AI가 판을 치는 지금보다 훨씬 절박했었다.
제조업에서 한 달만에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애플 아이폰 3GS가 처음 나왔을 때 시장점유율은 3%였다. 불과 한 달 만에 80%가 되었고 세 달이 지나자 아이폰을 제외한 전세계 다른 제품들을 다 합쳐도 10%가 안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에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다. 가장 혼신의 힘을 다해 사용한 방법은 바로 대한민국이 가장 잘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다. 쉽게 말해 남의 것을 까서 베끼는 것이다. 그러나 S/W가 남달랐던 아이폰은 기존의 재료/회로 중심 역설계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제일 잘하는 것이 먹히지 않자 회사는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그리고 인간사회 어느 곳이던 마찬가지인 것이 갈증이 곧 가장 큰 기회이다. 물을 팔기 위해서는 목이 마른 자에게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그래서 회사의 갈증을 이용해 한 자리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비온 뒤에 독버섯이 올라오듯 회사 내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보통 위기 상황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 "신문물"을 들여오는 것이다. 내가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어지러운 정세에 새로운 개념을 들고 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독버섯같은 사람들이 많은 신문물이 들여져왔다.
UX디자인, 인지심리학, 에자일, 다학제, 매트릭스 조직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특히 에자일은 마치 이것을 따라하기만 하면 LG전자도 마법처럼 실리콘벨리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느껴지도록" 보고가 되었다. 에자일이 소프트웨어 조직에 도입되고 아침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진풍경이 펼쳐졌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침에 스탠딩 스크럼을 하고 그것을 스크럼 마스터 인증을 받은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주관을 하는 희한한 모습이 펼쳐졌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LG전자 스마트폰 사업 철수였다. 나는 처음부터 이해가 안되었다. 스크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하는데 내가 경험한 수백명의 스크럼은 둘 중 하나로 구분할 수 있었다.
- 노가리
- 아침조회
21세기에 이게 뭐하나 싶었지만 한 번 하기로 한 것을 정말 열심히 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노가리가 되었든 아침조회가 되었든 다들 아침마다 일어나서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라니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기 부여가 안되는 모든 일들이 그러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형식만 남는 요식행위로 변질되어 갔다.
스크럼 자리로 이동하는 잠깐의 순간에 주마등처럼 과거 일들이 지나갔다.
노영일이 말했다.
오늘부터 며칠동안은 김상범님도 스크럼 함께 하실 거에요. 자. 상범님 소개 간단하게 해주시겠어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범이라고 합니다. LG전자에서 10년정도 근무했고 사내 정치에 밀려서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하고 잠깐 사업하다가 망했고 또 회사에서 좋은 기회 주셔서 합류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고 노영일이 다시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누구부터 할까요? 차미진님부터 해볼까요?
네.
차미진? 누군지 얼굴을 확인했다. 아. 저 사람이 차미진이구나.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저는 어제부터 가게 세는 쿼리를 좀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차미진님은 쿼리를 하는 구나 생각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나종수님?
네. 저는 비지니스 모델을 다시 만들어보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지금 미국 실리콘 벨리에서 요즘 팔란티어라는 회사가 있다던데 걔네들 엄청 흥미롭던데요.
잉? 이게 무슨 소리고. 팔란티어? 흥미롭다? 이게 지금 회사에서 나올 말인가 싶었다. 쟤는 뭐하는 애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도 궁금해졌다. 나도 모르게 홍채를 조여 나종수를 바라보았다. 몸매는 빼싹 마르고 키가 컸다. 주름이 많고 까만 얼굴이었다.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보였다. 쳐진 눈이 주름에 파묻혀 더 늙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영일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팔란티어. 대단하죠. 요즘 주식 엄청 올랐다가 많이 떨어진 거 같아요
그러자 나종수가 받아쳤다.
오~ 영일님. 주식 하세요?
노영일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주식 안해요. 사람들이 왜 안하냐고 하는데...그런 거 잘 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요.
나종수는 턱을 으쓱하면서 입가의 주름을 불독처럼 만들면서 말했다.
그래도 좀 하시야 할텐데...제가 주식으로 3년전에 5억 투자했었거든요.
네? 5억이요? 우와
5억? 오...
종수님 요즘 주식 뭐하면 좋아요?
갑자기 어떤 여자가 튀어나와서 물었다. 디자이너 명진화씨다.
나종수는 뭔가 생각하는 척하며 말했다.
음. 저는 요즘에...구글도 괜찮고 애플도 좋은 거 같아요.
시발 초등학생도 할 말이었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팔란티어를 이제 알아보고 있다고?
- 시장에 관심이 없는거 아냐?
- 남보러 자신처럼 주식을 하라며?
- 그래서 3년 전에 네 5억은 지금 얼마라는거냐?
이게 지금 무슨 대화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 근데 이번에 애플에서 새로 나온 아이폰 17e 새로 나온데요.
이어지는 명진화의 대답은 이미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내 머리는 이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노영일이 말했다.
주말에 성수가서 아이폰 16e 써봤는데 저하고는 좀 안맞는거 같아요.
그러자 다시 명진화가 말했다.
성수에 흑백요리사2에서 탈락한 철판요리집 아세요? 거기 진짜 괜찮은데...
이제는 차미진까지 말했다.
철판요리는 성수 거기도 맛있고 여기도 한번 가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종수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너무 이야기가 딴데로 새는 것 같은데 스크럼에 맞게 정량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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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뭔 소리야? 니가 제일 문제야. 너부터 이야기를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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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일이 멋적은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맞네요. 우리 맛집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시죠. 그럼 계속 진행할까요? 진화님?
명진화가 말했다.
지금 서비스 GUI 새로 뜨고 있고요. 에셋은 슬랙에 링크 달아놨는데요. 거기랑 클릭에 다 올려놨고요. 피그마로 바로 들어오셔서 보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기획이 안나와서 어떻게 해야할지 좀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종수님 도움을 받아서 진행 중이고요. 대표님이 웹사이트 만들어보라고 해서 고민 중입니다.
말은 제일 길었다. 그리고 내 인내심은 별로 남지 않았다. 이런 사내 회의는 사실 처음이었다. 머리 속의 생각이 복잡하게 엉켜있던 때에 노영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범님? 상범님?
아. 네
상범님 차례입니다.
저는 특별한 사항 없습니다. 온보딩 잘 마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스크럼 마치겠습니다!!!!
짝짝짝 다같이 박수를 쳤다.
커피 마시러 갈건데 같이 가실 분~??
저요
저여
그리고 나는 사람들 표정을 살폈다. 다들 매우 행복해보였다. 단 한 사람 정정훈을 빼고 말이다. 그는 말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과 대화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정훈님. 시간 괜찮으시면 차 한잔 할까요?
아니요. 싫습니다. 바쁩니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 불시착한 것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마비가 왔다. 그래서 뇌를 오버클럭해서 연산을 시작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더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처리할 방법이 내 머리에는 없었다. 개새끼...속으로 나는 되뇌였다.

- 4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