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속도 110km/h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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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속도 110km/h인 나라에서 차는 왜 200km/h로 만들어지나"라는 단순한 의문을 물고 늘어져, 시스템이 반박당할 때마다 공학→안전→비용→책임으로 방어 논리를 바꿔가며 물러서는 과정을 드러낸다. 그 끝에서 도로교통법은 사실 '효율'이 아니라 '국가가 가장 책임지기 좋은 형태'로 설계되어 있으며, 기계는 풀어두고 사고는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것이 KPI 하나 세워두고 흐름은 방치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담당자가 놓쳤다"로 끝내는 기업 조직과 똑같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국가든 기업이든 진짜 책임은 표지판을 박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며, 문제의 겉면만 얇게 발라놓고 해결했다 자랑하는 태도는 미래에 더 큰 짐을 떠넘기는 일이라고 맺는다.

#상식#논리#교통#조직관리

이해가 안가는 속도제한
이해가 안가는 속도제한

모순

최고 제한 속도가 110km/h까지인 나라에서 차량은 200km/h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진다

여기서 시작된 단순한 의문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시스템이 어떻게 자기를 방어하는지가 드러난다.

1. 차량을 110km/h까지만 달릴 수 있게 하면 되잖아

차량이 제한 속도보다 빨리 달려야만 하는 이유는 첫번째, 공학적인 문제이다.

만약 딱 110km/h 로 달릴 수 있는 엔진을 달고 있다면 그 차량은 매번 한계 주행을 해야한다. 그래서 공학적 마진이 필요하다.

배달 오토바이를 생각해보면 아주 분명하다. 최고 속도가 100km/h 남짓한 스쿠터로 60-70km/h 속도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가혹 환경이 되어 누적 주행거리가 불가 1-2만km 정도되면 엔진은 트러블이 쉽게 난다.

또 안전 문제도 있다. 비상 상황에 순간 회피 기동을 해야할 때 가속으로 필요할 수 있다. 만약 리밋을 걸어 가속이 안되어 사망했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제한 속도를 110km/h에서 더 낮춰야만 한다.

결국 기계의 마진이 필요한 것이다. 이 필요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필요를 생각하면 할 수록 말도 안되는 모순들이 등장한다.

2. 그러면 시속 300km 달릴 수 있는 차는 뭔데?

GTR!
GTR!

그런데 시중에는 돈만 있으면 70세 노인이건 18세 어린이건 고출력 차량을 구매해서 도로를 달릴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차량이 사람을 덮치는 사고나 도로에서 곡예운전을 하는 사고를 접할 수 있다.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시스템에서 차량은 110km/h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이 기계적 마진 문제도 해결하고 사용자의 안전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기계적 마진을 핑계로 차량의 최고 속도에 대한 논의는 없는 상황이다.

글쓴이 차량도 170마력, 270마력 2대의 차량이 있지만 사실 170마력도 온전히 한국 도로 시스템에서 쏟아낼 수 없다. 더욱이 차량소유자인 나는 170마력 차량의 파워를 다 쓸 운전 실력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270마력짜리 차도 가지고 있는 굉장한 보편적 아이러니이다.

3. 최고속도는 잡고 최저속도는 놔두는 것은 뭔데?

아우
아우

여기서 더 아픈 곳을 찌를 수 있다.

도로 위에서 최고속도는 카메라가 칼같이 잡으면서, 최저속도 위반은 왜 방치하나?

실제로 도로에서 최고 속도 위반 차량보다 더 큰 문제는 저속도 차량이다. 그들은 도로의 효율을 떨어뜨려 공공재에서 다수의 이익을 저해한다. 그럼에도 왜 저속도 차량은 단속 대상이 아닐까?

그 원인은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속도가 110km/h 넘겼다"는 카메라 한 장으로 끝나지만, 느리게 간 차가 고의인지 앞이 막힌 건지는 기계가 구별 못 하기 때문이다. 아니 구별을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구별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그럼 최저속도 관련 법을 폐지하면 되지 않나?

그렇다. 최저 속도 관련 법은 사실상의 사문법이다.

그렇지만 법을 없애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정 사고가 났을 때 저속 차량에 책임을 물릴 근거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5. 그럼 무엇을 위한 법인가?

이쯤 되면 도로 교통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교통공학에서조차 사고의 주범은 절대속도가 아니라 속도 편차라고 말한다. 뚫린 길을 빨리 가는 차보다 막힌 길에서 흐름을 끊는 차가 더 위험하다. 그렇다면 위법성은 상황마다 달라야 논리적으로, 공학적으로 맞다.

하지만 법은 숫자로만 재단한다. '흐름에 맞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증명이 불가능하고, 입증 비용이 수천 배로 뛰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법은 효율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가 가장 책임지기 좋은 형태(사망 사고 방지)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 그래서 기계는 풀어두고, 넘으면 벌금 물리고, 사고 나면 "전방 주시 태만"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AI 교통 제어도 정밀 센서도 이미 있는 기술이지만, 국가는 개편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낡은 카메라를 유지한다.

운전자에게는 목숨을 건 집중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기는 그만한 집중으로 도로를 관리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진짜 안일함은 여기에 있다.

6. 해결책은 없는가?

지금의 도로교통법은 매우 모호하고 안일하고 비겁하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한문철 변호사 유튜브 같은 콘텐츠가 끊임없이 역대급 사연을 갱신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현재 세계는 지구 전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기계가 사람말을 알아듣고 코드를 스스로 짜는 세상이다.

기술적 해결책은 당연히 존재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해야하는 일은 문제를 정의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고민 포인트는 도로 교통법의 존재 목적을 정의하는 것이다.

만약 그 목적이 (그럴 리 없겠지만) "무조건 안전하게" 라고 한다면, 법을 지키는 대상에게도 지금보다 안전에 대한 규정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맞다. 도로 전구간을 높은 속도로 달릴 수 없도록 만들고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아예 차량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반드시 정차하게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만약 법의 존재 이유가 "가장 효율적으로"라고 한다면 이것은 복잡한 접근이 필요하다. 효율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뻥 뚫린 도로에서 혼자 안전하게 140km/h로 달리는 차보다, 꽉 막힌 도로에서 혼자 정속을 고집하며 흐름을 막거나 칼치기를 하는 차가 훨씬 위험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도로 위의 운전자들 역시 변화하는 효율의 기준에 맞춰 마치 레이서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이것이 소위 국가 시스템 설계에서 말하는 '강한 책임주의'이자, '엘리트 중심의 고효율 통제 모델'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고효율 사회 통제 모델은 "자격이 없거나 집중하지 않는 불완전한 인간을 위해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지 말고,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스크리닝(골라내기)해서 도로 밖으로 퇴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관점은 도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정당한 논리적 흐름이지만 현대 국가들이 이 '골라내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마지막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이동권의 생존권화'와 '행정적 비용의 한계' 때문이다.

과거 자동차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에는 운전면허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고, 엄격한 자격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와 도로 교통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먹고사는 보편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만약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간격 제어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을 엄격하게 선별해 면허를 박탈하거나 진입을 막는다고 가정해보면,

도로 위의 효율은 엄청나게 올라가겠지만, 면허를 잃은 수많은 인구(고령자, 인지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 생계형 운전자 등)는 즉시 경제 활동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가는 이들을 복지 제도로 부양해야 하므로, '도로 효율 향상으로 얻는 이득'보다 '면허 박탈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복지 비용'이 훨씬 커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국가는 도로를 위험하게 만들지언정, 면허를 쉽게 주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도로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적으로 자율 주행이라는 미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운전자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모두가 동일한 수준으로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논리적 모순들이 사라질 것이다.

7. 기업도 똑같다

이 공방이 낯설지 않게 느끼 진다면, 아마도 당신이 조직에서 매일 겪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측정하기 쉬운 KPI 하나를 세워두고, 그 안의 비효율과 위험은 개인에게 떠넘긴다. 중요한 숫자는 다투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작 중요한 흐름—협업의 질, 맥락, 판단—은 관리 밖에 방치된다.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도 논리가 물러선다. 처음엔 "원칙"이라 하고, 밀어붙이면 "현실적 제약"이라 하고, 더 밀면 결국 "비용"이 나온다. 도로와 똑같은 순서다.

일이 잘못되면 결론은 늘 같다. "담당자가 놓쳤다." 시스템이 왜 그 실수를 못 걸렀는지는 묻지 않는다. 최저속도법처럼, 구조의 문제는 사고가 터졌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물릴 근거로만 남는다.

이것을 과거에는 무능이라고도 이야기했으나 사실 시스템의 무결성 또는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다 보면 그 걸림돌이 인간으로 수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 모두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뛰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무능을 감수하면서 자본 사회, 민주 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 사회의 통화량이 무한히 팽창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효율성 극대화라는 주제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면 앞서 도로 교통법, 속도 제한에 대한 이야기처럼 결국 인간도 자율 업무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8. 맺음말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때문에 자율주행이 당연시 되고, 자율 업무도 당위성을 확보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동화는 이 모순을 푸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대신 뒤집어쓰던 존재, 즉 인간을 치우는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스템은 비로소 정직해질까? 아니면 알고리즘의 오류, 예외 상황, 불가항력이라는 이름으로 새 담당자를 세워둘까?

나는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바뀌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책임을 얹을 대상이다. 도로 위 운전자에서 코드 몇 줄로, 조직의 담당자에서 모델의 파라미터로. 그러니 진짜 질문은 "인간은 언제 대체되는가"가 아니다.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지 끝내 정의하지 않은 채 인간만 조용히 치워질 때, 우리가 잃는 것이 과연 비효율뿐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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