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탕후루 가게, 함부로 비웃지마라.

·

두쫀쿠든 AI든, 유행을 만들고 수확하는 쪽은 자본이고 따라가다 쓸려나가는 쪽은 노동이다. 그런데 경제학과 과학에 답이 있다. 보몰의 비용 질병이 가장 심한 김밥 같은 현장에 기술을 넣는 것, 그리고 AI를 피치 덱이 아니라 슈뢰딩거의 감을 확장하는 도구로 쓰는 것. 답은 나와 있다. 다만 편하지 않을 뿐이다.

#오늘우리는

머스크가 던진 노동 종말의 파도,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일론 머스크가 또 한 번 예언을 던졌다. 옵티머스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며, 노동은 선택 사항이 되는 시대가 온다고. 2030년이면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특유의 스케일 큰 선언이다.

이런 뉴스를 보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세상이 바뀌겠구나" 하며 막연한 불안을 느끼거나, "또 저러네" 하며 넘기거나.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머스크의 예언이 맞든 틀리든, 지금 이 순간 우리 발밑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있다.


자본에게만 유리한 게임

두바이 쫀득 쿠키, 줄여서 두쫀쿠. 작년에 품귀 현상을 빚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되팔이가 나타나고, SNS가 들끓었다. 그 열풍은 두 달을 못 갔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보았다. 탕후루 가게에 임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 탕후루라는 게 있었지.

탕후루
탕후루

AI도 마찬가지다. AI가 발전하고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AI 발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을 잘 들여다보면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AI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다. 직접 모델을 설계하는 회사에서 데이터를 다루고, 아키텍처를 고민하는 사람들. 이들은 제품에 들어가는 기술로 논문을 쓰거나 코드를 짠다.

두 번째,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세상에 알려서 투자를 받고 싶은 대표들이다. 이들에게 AI는 피치 덱의 핵심 슬라이드이고, IR 미팅에서의 킬링 키워드다.

세 번째,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보여줘서 승진하고 싶은 직원들이다. "AI 전환"을 리드하고 있다는 타이틀은 요즘 가장 강력한 커리어 무기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네 번째도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적고, 그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을 가느라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이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핵심은 이거다. 첫 번째 부류는 두 번째, 세 번째와 사실상 관계가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에게도 첫 번째는 너무 멀리 있어서 생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다수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두쫀쿠도, AI 열풍도, 구조는 같다. 유행을 만들고 타이밍에 올라타 수확하는 쪽은 자본이고, 유행을 따라가다 쓸려나가는 쪽은 노동이다. 두쫀쿠에서 돈을 번 건 유튜버들과 배달 어플리케이션 회사뿐이다. AI에서 돈을 버는 건 GPU를 쌓아놓은 빅테크와 초기 투자자다. 퇴직금을 털어 외식업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AI 스타트업에서 피치 덱을 다듬는 직원이나, 구조적 위치는 같다. 유행이 꺼지면 임대 표시가 붙는 쪽.

예전에는 파리바게뜨가 잘 된다 하면, 퇴직금을 털어 가게를 내도 10년, 20년 수익을 안겨줬다. 장기 수입을 담보하기 때문에 서민들은 조금은 부당한 프랜차이즈 계약이라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한두 달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한두 달이면 가게 임대료 기준으로 깔세 장사를 해야 하는 거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세대가 "200따리가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퇴로가 없는 일을 시작하라, 열심히 하라고 나도 솔직히 말하지 못하겠다. 구조가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경제학에 답이 있다

꼬마 김밥 이야기를 해보자. 10년 전에 500원이었다. 지금은 5,000원도 넘는다. 10배다. 그런데 10년 전에 산 내 차는 4,200만 원이었는데, 지금 비슷한 차가 6,000만 원이 안 된다. 채 1.5배도 되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면 경제 센스가 좋은 사람이다.

우습지만 이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용어가 있으니까 말이다. 바로 보몰의 비용 질병(Baumol's Cost Disease)​이다. 1960년대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이 발견한 현상으로, 핵심은 이렇다. 제조업처럼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산업에서 임금이 오르면, 생산성이 거의 변하지 않는 서비스업에서도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덩달아 임금을 올려야 한다. 보몰이 원래 든 예시는 현악 사중주였다. 베토벤 시대나 지금이나 사중주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연주자 수와 시간은 똑같은데, 임금은 비교할 수 없이 올랐다는 것이다.

보몰
보몰

김밥은 인건비가 원가의 대부분인 사업이다. 밥을 짓고, 재료를 손질하고, 말고, 써는 과정 전부가 사람 손을 타야 한다. 반면 자동차 산업은 생산 기술의 발전과 규모의 경제로 지속적인 원가 절감을 이루어 낸다. 둘 사이에 가격 상승률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뒤집어 생각해 보자. 보몰의 비용 질병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이거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기술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그것이 곧 가치 창출의 최전선이 된다. 종이나 엑셀로 일을 보던 회사들에게 SaaS가 엄청난 변화를 주었나? 결국 SaaS 무용론, 더 정확하게는 구독 모델 무용론으로 결론이 거의 났다. AI가 진짜 큰 변화를 주는 곳은, 안타깝게도, 화이트칼라의 사무실이 아니다.

진짜 승부처는 김밥 같은 산업이다. 5,000원짜리 충무김밥을 2,500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 세탁, 청소, 수선, 농업처럼 인건비가 원가의 대부분이고 기술 혁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 보몰의 비용 질병이 가장 심한 곳이 곧 기술이 가장 큰 가치를 만드는 곳이다.


과학에도 답이 있다

물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혹은 재료공학이나 전자공학 출신이라면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을 학부 때 한 번쯤 접하게 된다. 여기에 아주 신기한 것이 숨어 있다. 슈뢰딩거가 파동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가정을 하나 하는데 이 가정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지금 유튜브를 뒤져봐도 그런 내용을 다루는 사람은 없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가정하면 이렇게 풀 수 있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sch
sch

학부생이었던 나는 너무 궁금했다. 학과 교수님들을 다 찾아다녔는데 제대로 대답하는 분이 없었다. 결국 타 학과를 돌아다니다가 이론물리를 하시는 서윤호 교수님께 답을 들었다.

"후훗. 상범군, 그건 그냥 감이야. 수학을 엄청나게 많이 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미시 세계를 하나의 방정식으로 만들려고 보니, 슈뢰딩거 그 양반 눈에는 맥스웰 방정식과 비슷한 구조가 보인 거다. 수식을 조작하기 위해 빈 블록이 필요했고, 그걸 복소수로 된 어떤 물리적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수학적 행위를 가정한 것이다. 수십 년의 수학적 경험에서 나온 직관. 논리 이전의 감각.

그런데 지금, AI가 이 "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AlphaFold는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해 2024년 노벨 화학상의 토대가 되었다. 밴더빌트 대학의 이론물리학자 알렉스 룹사스카는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방정식에서 새로운 대칭성을 발견한 뒤, OpenAI의 GPT-5 에이전트에게 같은 문제를 던져보았더니 워밍업 질문을 거친 뒤 동일한 대칭성을 찾아냈다. UC 샌디에이고에서는 AI가 알츠하이머의 원인 유전자로 알려지지 않았던 PHGDH의 숨겨진 역할을 단백질 3D 구조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앞서 말한 네 번째 부류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승진을 위해서도 AI를 쓰지 않는다.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기 위해 쓸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성과야말로 자본의 게임이 아니라 지식의 게임이다. 자본이 독점할 수 없는 영역. 슈뢰딩거의 감이 AI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리는 세계.


CRM의 비애, 혹은 전화번호부의 진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회사의 명운을 걸고 CRM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대체 왜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더 편한 CRM을 만들어서 팔겠단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듣던 친구가 한마디 했다.

"당신 고객은 CRM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객 전화번호가 필요한 거 아니요?"

맞는 말이다. 사용자는 자기 재화를 공급할 수 있는 고객과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가 필요한 거지, 스마트한 전화번호부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들은 스마트한 전화번호부를 만들어서 고객을 현혹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 본인들도 누군가 자신들에게 좋은 전화번호부를 사라고 하면 안살 것이면서 남들에게 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필요한 건 전화번호가 먼저이다. ㅋ

이 이야기가 앞의 두 가지 답과 연결된다. 경제학이 가리키는 답은 보몰의 비용 질병이 심한 곳, 그러니까 김밥 같은 현장에 기술을 넣으라는 것이다. 과학이 가리키는 답은 AI를 투자 유치용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을 확장하는 도구로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CRM을 만드는 쪽을 택한다. 현장에 나가는 것보다 피치 덱을 다듬는 쪽을 택한다.

최근 SNS를 보면 과고를 나오고 KAIST를 조기 졸업한 인재들이 자주 보인다. 그들은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팔고 다닌다. 그들은 왜 좋은 직장을 가지지 않을까? 왜 교육 콘텐츠를 팔거나 인플루언서를 하고 있을까.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똑똑한 아이들이니까 구조를 읽은 거다. 화이트칼라가 김밥 싸는 인력이 되어 버린 게 지금의 현상이라는 것을. 사무실에서 엑셀을 돌리고 보고서를 쓰는 일의 가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오픈클로를 쓰던 Skills를 쓰건 서로 이야기하는 에이전트가 4천만이 되건 바뀌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답은 나와 있다. 다만 편하지 않을 뿐이다.

머스크의 예언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로봇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고, 옵티머스가 비싼 장난감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두쫀쿠든 AI든, 유행을 만들고 수확하는 쪽은 자본이고, 유행을 따라가다 쓸려나가는 쪽은 노동이다. 이 구조는 머스크의 예언과 상관없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학은 보몰의 비용 질병이 가장 심한 곳에 기술을 넣으라고 말한다. 과학은 AI를 피치 덱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도구로 쓰라고 말한다. 5,000원짜리 김밥을 2,500원으로 만드는 것. 슈뢰딩거의 감을 AI로 더 많은 사람에게 여는 것. 방향은 같다. 자본의 게임판 위에서 노는 대신, 자본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현장에서 기술로 판을 새로 짜는 것.

간단하다고 실행까지 간단한 건 아니다. 머리로 안다고 몸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CRM을 만들고 피치 덱을 다듬는다. 거기에 해당된다고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그런 회사, 그런 사람들이 다수다.

다만, 탕후루 가게에 붙은 임대 표시가 당신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스타트업에게 묻는다

망한 탕후루 가게, 함부로 비웃지 마라

스타트업, 너는 어떤 고객에게 한번이라도 필요한 제품이었느냐

반쯤 비워진 탕후루 가게

언젠가는 건물주하고 싶을 것이다

설탕을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말어 보고 싶은 것이다

계약하러 왔던 부동산 아줌마가 다시 임대 광고 내면

탕후루 가게, 처음으로 붙여진 가게 이름도

으깨어져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본 것이다...

이것도 읽어보세요

댓글

이 에세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댓글 (0)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