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건의 발단
2월 말이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렸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대충 충전 케이블을 정리하고 차를 움직였다. 스르륵 움직이자 마자 뭔가 꿀렁했다. 충전케이블을 차가 밟은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 날 따라 약속시간에 쫒겨 허둥대는 내 자신이 싫었다. 비가 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서둘러 케이블을 정리했다.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손에서 놓친 커넥터가 차 옆구리를 땅!하고 때렸다. 순간, 온 몸이 굳었다가 다시 차를 확인해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아니 비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설이 지나고 3월이 되어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 어라? 차 옆구리에 작게 옴폭 들어가 있었다. 비오던 그 날이 떠올라랐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차라리 남이 가해했으면 마음은 덜 아팠을 것 같다. 아. 내가 괜히 그 날 시간도 넉넉했는데 서두르다가 이렇게 일을 만들었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집으로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 어플을 깔기 시작했다. '카닥'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도장면도 괜찮고 덴트로 고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날아오는 견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 55만원, 44만원, 29만원...
- 수리기간 1일~2일???
찝찝한 기분으로 다른 어플을 깔았다. '숨고'이다. 예전에 집 건축할 때 아주 잘 사용했던 어플이라 내 기억에서 인상이 좋았다. 숨고에도 차량 수리가 있겠지 하고 확인해봤다. 그리고 견적을 요청했더니,
- 20만원, 25만원...
- 수리기간 1일 이상???
내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이런 거 하나 뽑아 올리는데도 30만원 이상 줘야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55만원이면 문짝 도색을 새로 하는 가격 아닌가? 요즘 문짝 도색은 한 판에 100만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자초지종
그래서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 볼보 처음 뽑았을 때 자주 가던 매직덴트 잠실점 사장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름 단골이었고 사장님 실력은 테스트드라이브에서도 꽤 알려져 있었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이사가셨던데..."
장미 아파트 재건축으로 사장님은 논현동으로 이사를 가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문콕 하나 하려고 여기까지 오시게?라며 그 쪽에도 문콕 정도는 잘 할텐데..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 덴트도 싸지 않아요. 저는 칠이 전문이고 전에 같이 있던 그 동생 연결해줄테니 이야기해봐요"
엉겁결에 동생분과 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분 말씀은 이랬다.
- 요즘 차는 알루미늄이거나 강화 철판이라 쉽지가 않다.
- 특히 당신 수리 부위는 공구가 안들어갈 확률이 높다.
- 수리가 되면 우리는 25만원
생각해본다고 말씀드렸다.
3. 사건의 결말
곰곰히 생각해봤다. 차를 2일이나 못 쓴다. 그리고 20-30만원 지불해야 한다. 돈은 내가 내는데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특히 내 차가 수리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 볼보 때도 마찬가지였다. 뭐만 하려고 하면 그 놈의 볼보, 볼보. 볼보라서 안된다. 볼보라서 비싸다. 어찌보면 나는 경험이 좀 있는 사람이었다. 책상에 앉아 어려운 걸 어떤 사람이 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차분히 생각해봤다. 잠시 후 세 단어가 떠올랐다.
장. 한. 평
옛말에도 컴퓨터는 용산으로, 오도바이는 충무로로, 스키는 학동으로, 자동차는 장한평으로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 가보자. 장한평 검색 돌려보니 몇 군데 바로 나왔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는데 신중한 사장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작아보이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직접 봐야 알겠습니다'
바로 장한평으로 향했다.

장한평에 도작하자 날씨마저 우중충하니 마치 신라컴퍼니 심장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신라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게 구불구불 조심조심 골목길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내 앞차도 나와 똑같은 덴트집에 주차를 했다. 허름한 가게에는 이미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내 차 상태를 진단하셨다.
"음. 작지만 깊네요. 장비가 들어가면 쉽게 될거고 안들어가면 안돼요. 1시간만 주세요"
"비용은 어떻게 될까요?"
사장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되면 5만원만 주세요"
나는 사장님 쿨내에 쓰러질 것 같았다. 마라향 같기도 하고 코가 얼얼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천천히 오세요"
미친 속도였다. 나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아서 경보로 칼루이스처럼 걸어갔다.
오 마이 갓

사진에는 perfect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짝 보인다. 째려보면 보인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공구가 안들어가서 애먹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주 얇은 공구로 펴야해서 완전히 펼 수 없으셨다고 힘없이 말씀하셨다. "조금만 큰 공구가 들어갔으면...."이라면서. 나는 사장님 말씀 끝나기도 전에 바로 주머니에서 현금 5만원을 꺼내어 드렸다.
사장님은 5만원 다 받는 게 좀 미안한 눈치였다. 동시에 내 머리 속에는 10만원 드린다고 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100% 만들어 주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너무 좋았다. 30분~40분만에 95%이상 수리가 5만원에 끝났다. 5%를 위해 최소 15만원과 24시간을 더 써야하는 것을 이렇게 선방한 것은 5만원 이상의 값어치였다.
4. 시사점
나는 오늘 집에 돌아오면서 숨고,카닥과 같은 서비스들의 약점에 대해 생각했다. 카닥과 숨고는 웹서비스를 위해 일정한 포맷을 만들었다. 이 포맷에서는 사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한다. 그래서 작업자는 보수적이 되고 소비자는 그만큼 순간적이고 계산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 온라인에서 사진만 보고 5만원, 1시간 안에 수리한다고 말했다가 실제로 수리가 5시간이 걸리면 작업자는 큰 손해다.
- 동시에 나처럼 소비자는 좀 더 작업자와 이야기할 생각보다는 다른 대안들을 검토하게 된다.
- 나아가 작업자들은 더 많은 다른 작업자들과 무한 경쟁해야 한다.
- 그 결과, 수주할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 수주 확률이 떨어질 수록 점점 더 플랫폼 의존적이 된다.(광고비를 쓰게 된다)
- 결국 증명사진처럼 한 건의 비용을 올려서 수익을 보전할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인건비가 올라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한다.
지난 번에 생태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태계가 구성되려면 "자본의 민주적 분배"가 필수적인 요소이다. 카닥과 숨고 방식이 자본의 민주적인 분배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자본 만능적 분배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민주적으로 보이나 자본의 크기에 따라 분배가 결정되는 착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에서나 볼 수 있는 악랄한 구조이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소비자마저도 장기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카닥, 숨고와 같은 플랫폼 설계는 아주 단기적인 생태계를 구현한 것이다. 마치 샤알레 안에 들어있는 식빵에 핀 곰팡이처럼 증식하다가 결국 둘 다 말라죽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철학적인 내용을 숨고나 카닥 사람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팩트, 오늘은 숨고, 카닥을 장한평이 압살한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