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에 현역으로 이직한 이야기

·

“47세라는 나이와 엉망이던 이력서 탓에 35개 기업에서 연속 탈락하며 시니어 취업의 냉혹함을 체감했다. AI 의존을 버리고 직접 이력서를 8번 수정하며 나이/경력 상한 공고를 피하고 마감 기한이 명확한 채용건 위주로 전략적으로 다시 지원했다. JD 분석부터 서류 전달 과정까지 채용 시장의 AI 소통 왜곡 구조를 파악해 적용한 끝에, 좋은 타이밍과 운이 맞아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취업

할배
할배

"선택지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 왜 이 회사를 선택하셨나요?"

우리 회사에는 90년대생 동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할배인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 한다. 어제도 네이버-토스 출신 FDE 동료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나이가 들면 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가 저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번 취업은 어려웠다.

2회에 걸쳐 이력서를 총 50개 회사에 넣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에 3개 이상 기업에 이력서를 써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서류에서 광탈한 경험도 낯설었다. 47년 동안 나에게 취업이란 적어도 서류 전형은 어렵지 않게 붙는 것이었다. 지난 4월에 35개 회사를 지원하고 다 서류에서 떨어졌다. 살짝 충격을 받은 나는 구직을 멈추고 원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7월에 15개를 더 지원하면서 그 중에서 합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취업 과정은 나에게 시니어 취업 성공 패턴을 찾는 과정이었다. 과거 사업이 망해서 염라 대왕을 몇 번은 만나고 온 나에게는 이 과정은 약간 빡친 상태로 하는 실험에 가까웠다. 참담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은 거의 없었다. 내가 직장인으로 살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였고 문제였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어쨌건 문제를 해결했다. 실험을 하면서 많은 디테일들을 얻었지만 다 공유하기엔 너무 길고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공유해 본다.

1. 먼저 내 경력소개서는 내 판단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탈락이 반복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문서를 자세히 보면 볼수록 가관이었다. 기본적인 오타 수정도 안되어 있고 문장의 완결성이 부족하며 임팩트 있는 흐름 설계가 안되어 있었다. 나는 과거 직장에서 문서 작성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었으나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말처럼 자신의 경력을 자랑할 땐 중언부언 말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클로드와 함께 쓴 문서는 퀄리티가 더 떨어졌다. AI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내 색상을 잃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AI를 거부하고 손으로 직접 8번 버전 수정하고 나서야 내 이력서는 비로소 읽을 만한 문서가 되었다.

2. 나이나 경력 상한이 있는 공고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나는 JD가 어느 정도 내 경력이랑 핏이 맞고 분야가 흥미가 있으면 연차가 좀 안맞아도 일단 넣고 봤다. 그러나 회사에서 구인 공고에 정확한 숫자를 적어 놓았을 땐 다 이유가 있어서 상한을 정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타당하다. 그런데 오만하게도 나는 나 정도면 그들이 당연히 꼼꼼히 문서를 읽어 보았을 것이며 그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으면 일단 만나보고 고민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정말 대놓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 행동을 보니 내 마음이 그랬다고 거꾸로 알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50개 중에 나이/경력 상한 있는 공고는 단 1개도 서류 통과조차 못 했다.

3. 마감 기한이 있는 공고를 선택해야 했다.

채용 시장을 2개월쯤 지켜보니 구직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 중 (특히 리더급 채용) 상당 수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명 뽑힐 법도 한데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공고에 지원하면 일단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이 안된다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열람조차도 안하다가 흐지부지 탈락 처리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들 구직 공고의 공통점은 마감기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대로 마감 기한이 분명한 공고들만 지원을 했더니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4. 취준생은 서류를 AI로 써서 제출하고 회사도 제출 서류를 AI로 읽는 것 같다.

이것은 가장 흥미로운 가설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면접에 가보면 내 예상보다 내 서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의없이 면접을 진행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것은 논외로 하자. 다시 돌아오면 이 가설이 참이라면, 이력서 제출 - 이력서 검토라는 서류 중심의 소통이 AI를 거쳐 왜곡되거나 누락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꿔 말하면 취준생 입장에서 JD를 읽어야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AI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꼼수 정보들을 더해 어느 정도 골격을 갖추자 취업 시장에서 영하에 있던 온도계 눈금이 아주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에 내 마음에 드는 취업이 성립된 것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넘친다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또 직장인 경력을 이어나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내가 47살 먹고 이력서 50개 쓴 것이 창피해야하는 일인가 잠깐 생각해봤다. 전혀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이 취업으로 고민하는 그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유해 본다.

이것도 읽어보세요

댓글

이 에세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댓글 (0)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