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읽은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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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는 왜 귀향(수렴)의 오디세이아를 정처 없는 우주 항해(발산)에 붙였나. 지구가 아닌 우주를 진짜 고향으로 재정의하면, 발산은 곧 더 큰 귀향이고 두 작품 다 시련을 통한 성인식 플롯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 '완성'을 결말로 다시 보면,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를 학살하고 기쁨조차 금지당하며 보먼은 감정을 거세당한 채 인간이라는 종을 버린다. 완성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의 왜곡이자 인간성의 비움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타카의 왕도 스타 차일드도 될 수 없었다.

#고전#SF

오디세이
오디세이

호메로스와 아서 C 클라크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기다리며 어릴 적 읽었던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었다.

읽고 난 후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이후 왕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데 왜 아서 C. 클라크는 자신의 작품에 스페이스 오딧세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정처없이 우주로 나아가는 이야기란 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집(이타카)이라는 명확한 목적지를 향해 좁혀져 들어가는 ‘귀향’의 서사

스페이스 오디세이: 지구라는 고향을 떠나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무한한 우주와 고차원의 영역으로 뻗어 나가는 ‘탐험’의 서사

중년이 되어 다시 원전을 보니 영화 제목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스탠리 큐브릭과 원작자 아서 C. 클라크 제목에 "오딧세이"를 넣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진짜 ‘고향’은 어디인가?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에게 고향 = 가족이 있는 영토 ‘이타카’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주인공, 보먼의 고향 = 지구?

그런데 지구가 아닐 지도 모른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인류가 지구라는 고향 방에만 갇혀 있는 유아기적 상태를 벗어나, 진짜 고향인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본 것 같다. 즉, 인간의 몸으로는 지구를 떠나는 ‘발산’이지만, 인류의 근원을 찾아 우주라는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인 셈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태아의 모습을 한 ‘스타 차일드’가 되어 다시 지구를 바라보는 장면이 시작점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진짜 고향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문명의 ‘성인식’

스타차일드
스타차일드

두 작품 모두 "시련을 겪으며 미성숙한 존재에서 성숙한 존재로 거듭난다"는 원형적 플롯을 공유한다.

오디세우스는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오만을 버리고, 신의 뜻을 이해하는 성숙한 ‘왕’이자 ‘인간’이 되어 돌아옴.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인류는 도구를 쓰기 시작한 유인원(미성숙)에서 출발해, 우주로 나아가 HAL 9000이라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스타 차일드’라는 초월적 존재(성숙)로 진화함.

감상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도 스탠리 큐브릭의 오딧세이도 시련을 겪으면서 완성의 길로 간다고 한다. 인간의 창작물에서는 이 과정이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정말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인가?

중년이 되어 생각한 시련을 겪으면서 완성의 길로 가는 것이란 인간이 점점 한쪽 방향으로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내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잔혹하게 학살하고 복수의 끝에서 기쁨조차 표현하지 못하게 한다.

또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주인공 보먼 역시 동료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는 과정에서 감정을 완전히 거세당한다. 극도의 고독 속에서 그가 마주한 '스타 차일드'로의 진화는, 따뜻한 인간성의 완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버리고 초월적인 무언가로 변형된 것에 가깝다.

그래서 누구나 이타카의 왕이 될 수 없었고 누구나 스타차일드가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저씨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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